가죽으로 만든 예쁜 꽃신은
여자들의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남자들의 가죽신 또한
색상이 화려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더군요.
돌날에 신는다고 하는데요,
가죽신의 이름은 태사혜입니다.
목단이나 십장생으로 수를,
여자 아기 돌신발인 여아혜에는
매화로 수를 놓는다고 합니다.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고 예쁜지...
남자아기와 여자아기의 전통 가죽신을 원한다면 살 수도 있다고 합니다.
좌우 구별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을 신다보면 신는 사람 발에 맞춰
신발 모양이 변해 자연스럽게
좌우 구별이 생긴다네요.
가죽신에 비단을 붙일 땐
전통방식 그대로 밥풀을 이겨 풀로 사용합니다.
멧돼지 갈기털을 바늘로 사용하며
송곳으로 뚫고 맷돼지터러 바늘을 이용해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요.
실은 명주실과 무명실을 사용한다고
황해봉 선생 이수자는 말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6호 화혜장'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비단에 십장생을 수를 놓아 장수를 기원합니다.
신발에 모란꽃을 수놓아
부귀영화를 기원했다네요.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 여인들이 신었던 당혜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어 당혜라 불립니다.
상을 당했을 때 조복과 제복으로 신었답니다.
코와 뒤에 흰 줄무늬를 새긴
남자용 가죽신입니다.
사대부나 양반 계급의 나이 많은 사람이
평상시에 신었습니다.
국장을 치를 때 신은 하얀 가죽신 백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신발을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신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판교노인종합복지관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방문해
'국가무형문화재 화혜장 보유자' 작품 <꽃신>을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었던 의례용 신발인 청석입니다.
조선시대 말 황태자비였던
이방자 여사가 신었던 청석을
화혜장 황해봉 선생이 복원하여 전시했습니다.
신던 의례용 신발 적석입니다.
이 적석은 고종황제가 신었던 것을
복원했다네요.
왕이나 세자빈의 법복인 적의를 착용할 때
신던 의례용 신발인 청석입니다.
순종왕후가 신었던 것을 복원한 것인데요,
실제 순종왕후가 신었던 청석은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황해봉 선생의 수제자이며 화혜장 이수자인
황덕성씨의 도움을 받아
청석을 보았습니다.
발등에 끈을 달아 신발이 벗겨지는 것을
방지해 두었더군요.
황해봉 선생의 제자이자 아들인 황덕성씨는
가업을 잇고 6대 화혜장이 되기 위해
6년째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황덕성씨가 황해봉 선생의 대를 이어
화혜장이 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유일무이 6대째 가업을 잇는
명인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이어가기를 부탁하며...응원합니다. 화이팅!!
신발 밑바닥을 실로 묶어두었는데요.
이렇게 실로 묶어둔 것을
씨앗수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6호 화혜장 보유자'
황해봉 선생이
5월 31일 10시 30분
판교노인종합복지관에서
꽃신 만드는 작업을 시연한다네요.
기다림의 미학!!
우리나라 전통신 꽃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품 보러
판교노인종합복지관으로 오세요~~
'국가무형문화재 제116호 화혜장 보유자'
황해봉 선생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